2008. 9. 9. 18:55

소로스의 의외성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와 관련하여 소로스의 책을 한 권 읽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며,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환투기의 대가' 소로스와는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퀀텀펀드를 조직해 영란은행을 무너뜨릴 정도로 지독히 자본주의적인 그가 오히려 시장근본주의자들을 비판한다. 그래서 그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욕구가 일었다.

1. 시장주의자들
시장근본주의자들이라고 하면 먼저 현대경제학의 주류를 이루는 '새고전학파'의 실물경기변동론자(RBC)와 화폐경기변동론자(MBC)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학자로 전자에는 슘페터가 후자에는 프리드만이 있다. 이들은 모두 시장의 '균형'을 전제해두고 경기의 변동은 균형자체의 이동으로 보아 언제나 시장은 합리적인 경제주체들에 의해 균형에 수렴해간다고 보았다. 둘 다 공급측면을 중시하여 전자는 기술혁신을 경기변동의 핵심으로 파악했고, 후자는 화폐공급을 경기변동의 핵심으로 보았다. 이들은 1930년대의 '케인즈'와 대립했던 고전학파의 계보를 잇는만큼 시장의 완전성, 가격의 신축성, 합리적인 기대 를 이론의 전제로 한다.
소로스는 이를 계몽주의적 시대착오라 부르며 시장과 가격의 완전성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포퍼가 말했듯이 반증가능성에 의해 완벽한 지식은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시장의 완전성도 현실을 크게 왜곡하는 가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합리적인 기대에 대해서는 그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재귀성(reflexivity)'을 들어 기존의 관념을 반박한다. 이에 대해선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2. 케인즈주의자
대공황시기의 케인즈도 당대의 주류경제학을 비판하며 가격의 신축성을 부정했다. '장기에 우리는 모두 죽고 없다.'는 유명한 말로 그의 거시경제관을 알아볼 수 있다. 그 또한 시장참여자들의 합리적인 기대를 비판했고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등의 단어로 비이성적 인간을 가정했다. 여기까지 보면 소로스는 케인즈주의자인 듯 하다. 하지만 앞에 언급한 재귀성은 케인즈주의자들 마저도 시장근본주의자들의 범주에 넣어버린다.
재귀성은 시장과 시장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의 관계를 독립적인 것이 아닌, 상호영향을 주는 관계로 설정한다. 이는 그 유명한 '루카스 비판(Lucas Critique)'을 연상시킨다. 새고전학파인 그는 케인즈에 대해 정부정책이 경제주체들의 '예상'에 의해 의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예상이 '완전정보'를 가정한 '합리적인' 예상이라는 점에서 소로스와 루카스는 양 극단에 선다. 소로스의 재귀성은 시장이 균형을 부정하는 측면에서 결정적으로 그가 케인즈주의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시장의 균형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즉 가격기구에 의해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점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균형은 시장의 참여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변해가는 '자기강화'의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경기변동이 균형으로부터의 이탈(deviation from equil.)이라는 케인즈주의의 시각과는 전제부터 다른 것이다. 하지만 소로스는 케인즈주의자처럼 시장을 불신하고 정부개입을 말한다. 무슨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를 알기 위해 재귀성을 좀 더 들여다 보자.

3. 재귀성(reflexivity)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의 책에서 재귀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예가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유가상승에 대한 그의 견해이다. 유가의 공급측면을 분석하며 그는 중동국가들이 유가가 상승해도 유류의 공급을 증가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기존의 우상향하는 공급곡선을 부정하는 견해이다. 가격이 상승하면, 수익성이 높은 금융상품에 자금이 모이듯, 생산은 증가해야 한다. 소로스는 가격의 상승하는 시장이 다른 모든 요소들과 독립된 뉴튼의 '절대공간'이 아니라 말하며 지하에 묻힌 원유의 가치와 지상에 나도는 달러화의 가치를 비교한다. 가격이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가격이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그것이 어떤 지형에 서있는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는 시장의 참여자를 인식하는 주체로 부각시킨다. 그리고 현실의 시장은 참여자들에 의해 결정되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소로스의 생각은 감상자가 그림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저 에셔의 그림을 연상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rint Gallery, 1956, Lithograph>

내가 이해한 재귀성의 개념은 여기에 가깝다. 그는 같은 논리로 시장의 유일한 균형의 존재를 부정한다. 균형은 참여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자기강화를 거치며 변해간다. 인식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인식으로 인해 현실을 바뀌어 나간다. 그래서 소로스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4. 결론
소로스는 서브프라임모기지론사태에 대하여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요청한다. 어떻게? 시장의 결함을 전제하므로 MBC와 같이 준칙적인 개입은 안된다. 또 단지 '유동성'만을 공급하는 것에도 반대한다. 시장은 자기조정기능에 따라 균형에 수렴해가지 않으므로. 그렇다면 재량적인 개입을 해야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그것은 이번 금융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대형 투자은행이나 금융회사가 아닌 주택비소유자들의 안정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소로스의 의외성을 발견한다. 소로스는 확실히 환투기를 통해 시장을 이용하여 돈을 벌었다. 하지만 시장은 그에게 신봉의 대상이 아니다. 시장의 결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돈을 벌수 있었으며, 그러므로 시장의 룰은 점점 수정되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룰을 악용한 대형자본가들에게 책임을 물며, 그 영향으로 피해를 본 다수의 약자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소로스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소로스를 너무 이상적인 자본주의자로 본 것일까? 그의 행적과 지금 나의 분석은 큰 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년에 최소한 책을 통해서 이런 반성을 하게 되었다고 본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성적인 자본주의자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