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소재부터 마음에 들었다.
'연'은 우리나라에서도 전래되어 오는 놀이도구이기도 하고,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 처럼
'아이'들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은 재미있게 보았고, 촬영에 감탄하며 보았으며, 영화적 배경을 알고 가슴아파졌다.
연날리기, 아이들, 내전 순으로 범위를 넓혀가며 영화리뷰를 써볼까 한다.
1. 연날리기
오른쪽 소년이 '아미르'고 '파슈툰족'아이이며, 왼쪽이 '핫산'이고 '하자라족'아이다.
아프가니스탄 전통 연날리기는 이렇게 주인(아미르)과 하인(핫산)이 한 조가 되어 이루어진다. 주인은 연 싸움을 하고 하인은 연의 움직임을 쫓는다. 그리고 연 싸움에 이겼을 때, 연을 주워오는 것도 하인의 역할이다. 즉 '연날리는 아이'와 '연을 쫓는 아이'가 한 조를 이룬다.
'핫산'은 카불 최고의 '연을 쫓는 아이(Kite runner)'다. 연 싸움 전략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연을 주워올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끊어진 연이 떨어질 곳을 '알고'있다. 그저 알고 있다. 눈으로 연을 쫓거나 그림자를 따라가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것을 직관적으로 아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연을 쫓아가지만 그 능력은 오직 도련님 아미르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아미르를 위해선 '천 번이라도(thousand times over)'할 수 있다. 이런 핫산은 다른 아이들의 질시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연날리기에 낄 수 조차 없는 아이들에겐 더욱 그럴 것이다. 그것이 파슈툰족 아이라면 더욱. '아셰프'는 그런 아이들을 대표하는 존재다. 아셰프의 분노를 알기 위해서는 아프간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파슈툰족과 하자라족
지도에서 파란색 영역으로 표시한 지역이 아프간의 지배부족인 파슈툰족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파슈툰족은 18C이후 부각되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은? 바로 13C경부터 계속되는 몽골족의 지배가 있었던 것이다. 아셰프의 말처럼 '콧대가 낮은' 하자라족은 몽골의 후예들이다. 티무르제국 당시의 수도는 '헤라트'. 아직까지도 아프간에서 가장 자유롭고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다. 물론 하자라족의 주거주지역이며, 1990년대 인기많던 탈레반조차 결코 환영받을 수 없었던 지역이기도 했다.
티무르제국이 멸망하며 파슈툰족 왕국이 들어선다. 이때부터 하자라족은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한다. 아마 파슈툰족에겐 자기땅을 짓밟은 이민족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본에게 느끼는 민족감정과 유사할지도 모르겠다. 쪽바리놈들...하는것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미르 가족내에서의 관계는 무척 화목하다. 아미르의 아버지인 '바바'와 핫산의 아버지인 '알리'는 정중하지만 다정하고 친근하다. 서로의 존재는 고결한 '명예'의 의미를 갖는다. 아미르와 핫산이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내는 것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아미르는 저 흰나무에 '아미르와 핫산, 카불의 황제들'이라고 새긴다. 아미르는 아마 핫산을 자신과 대등하게 혹은 그 이상의 존재로 생각했을 것이다. 아셰프 패거리에 맞서는 '용기', 연을 쫓아가는 '감각', 자신이 지은 소설의 틀을 넘어가는 '자유'로운 사고... 어쨌든 아미르는 적어도 핫산을 진심으로 대했다. 자신의 든든한 지원자로서,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서. 이 장면은 핫산이 좋아하는 '로스탐과 소라브'를 아미르가 읽어주는 장면이다. 아마도 수십번째..
하지만 카불 내의 주류적인 분위기는 그렇지가 못하다. 하자라 소년 핫산은 저녁 파티에서 시중들고, 연을 줍다 '폭행'당하고, 아미르의 미움을 받아 쫓겨난다. 정확히 표현하면 주인의 '뜻'을 헤아리고 물러난다. 일단 아이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3. 내전기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 분 때문일 것이다.
사이이드 루홀라 호메이니(1902~1989). 이 분이 소위 '이란혁명(1979)'을 성공시키면서 그 영향으로 아프간내의 공산주의 정권인 '인민민주당'이 내부분열로 전복되고, 그것을 명목삼아 소련이 남하하게 된다. 실질적 이유는 각설하고, 이로 인해 대부분의 파슈툰 족은 난민이 된다. 미국으로, 호주호, 이란으로 세계 각지로 흩어진다. 아미르 가족은 저 위의 지도에서 파키스탄영내에 찍힌 빨간 점, '페샤와르'로 도피한다. 지도에 표시했듯이 오래전부터 파슈툰 거지주역이었던 관계로 무척 환영받는다. 다만 '빌어먹을' 소련놈들 때문에 바바 아저씨가 '품위'를 보여주실 기회가 있긴 했지만. 정말 멋졌다. 바바아저씨. 이슬람의 미덕을 갖춘 자상한 아버지다. 영화장면을 Capture못한게 아쉽다.ㅠ
그 이후의 역사는 1980년대 '무자헤딘(투쟁하는 사람들)'의 격렬한 저항과 소련 내부적인 사정(경제 위기, 페레스트로이카 등)이 겹쳐 10년 만인 1989년 소련이 완전히 철수하게 되는 것이다. 소련 철수 후 무자헤딘은 권력투쟁에 물들고 폭정을 일삼자, 그것을 종식시키고자 나온 것이 '탈레반(학생들,구도자)'이었다.
1998년, 미국에서 결혼을 한 아미르가 '카불'로 돌아와서 보게 된 광경들은 이 탈레반들이 만든 국가였다. 탈레반의 '전횡'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장면들.. 내가 사전지식없이 본 느낌으로는 '공포정치'에 그 자체였다. 다리를 팔아 먹고사는 아이들, 길 가에 목 멘 사체가 걸려 있고, 고아원은 아이를 '상납'하고, 간음한 여인은 축구장에서 공개처형당하는 도시. 그 한가운데에 파슈툰족 '아셰프'와 핫산의 아들 '소라브'가 있었다.
4. 아프가니스탄 사람
핫산의 죽음을 들은 아미르는 그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소라브를 찾아 카불로 떠난다. 그가 거기서 본 것은 참혹하게 변해버린 어린시절의 도시였다. 소련군에게 짓밟히고 탈레반에게 유린당한 절망의 도시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었다. 탈레반은 소련군 철수 후 부패했던 군벌들을 타도하고 이슬람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등장하였다. 전국을 통일하여 경건한 이슬람 사회를 재건설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을 '학생들','신도들'로 칭하였던 것이다. 다소 엄격하긴 하지만 남녀복장규정(남자는 터번을 쓰고 샬와르 카미즈를 입고 턱수염을 길러야 하며, 여자는 몸전체를 가리는 부르카를 입어야 함), 하루 다섯번의 기도, 조형물 제작금지(아마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일듯)를 규정하는 법령을 반포했다. 이건 이슬람교의 질서에 관한 것이므로 다른 국가, 다른 종교가 뭐라 할 것이 못된다. 지적할부분이 있다면 여성의 양육책임을 강조하고 교육시설을 없애는 여성차별적인 규율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아주 고질적인 하자라족 차별(심지어 학살행위까지!)이 문제된다.
무자헤딘이 권력투쟁에 눈멀었다면 탈레반은 정복욕에 눈이 멀어 타락하기 시작한다. 아프간을 정화하고자 하는 의지.. 그것은 지나친 엄격주의로 나타났으며 영화가 보여주듯 공포정치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조형물을 거부하는 신앙의 극단은 2001년 바미얀 불상의 파괴로 치닫는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실치 않지만 9.11테러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국내외적으로 '광신'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해져버렸다.
영화의 시점은 그 과정에 있는 1998년을 비춘다. 여전히 하자라족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 아셰프는 조국을 떠난데 대해 아미르를 비난하고, 아미르는 아셰프가 말하는 이슬람의 질서에 혐오감을 느낀다. 같은 파슈툰족이지만 이미 삶의 방향이 너무나 달라져버린 것이다. 누가 진정 아프간 사람일까.
소라브는 아셰프의 '노리개'가 될만큼 다재다능한 아이다. 아버지를 닮아 '용기'있게 아미르를 구한다. 새총으로.(연도 새총도 콧대낮은 것도^^ 친근하다. 우리는 같이 살았던 적이 있었다.)
2000년의 미국. 아미르는 소라브를 '하자라 아이'라 부르는 장인에게 정면으로 부딪힌다. 뿌리깊은 파슈툰족 '장군님'에게 미천한 하인의 '이름'을 불러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아프간 사람은 시대에 맞게 변해나가는 것이다. 부당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탈레반의 종교적 엄격주의는 다소 차별적으로 보인다. '문명인'들은 아마 이 때문에 분노하는 것일거다.
이제 영화는 다시 아이들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20년전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아미르는 핫산을 추억하며 자랑스럽게 소라브에게 말한다. 너의 아버지는 카불 최고의 '연을 쫓는 아이'였다고. 핫산의 믿음을 져버린 자신을 책망하며, 그 댓가를 소라브에 대한 사랑으로 보상한다.
아미르도 소라브를 위해선 '천번이라도' 연을 쫓아 갈 수 있다. 이렇게 영화는 감동적으로 끝을 맺는다.
5. 소회
영화를 보면서 제일 감탄했던 건 촬영기술이었다. 근경에서 원경으로, 아이들의 시점에서 연의 시점으로. 자유롭게 펼쳐지는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촬영을 더욱 빛나게 했던 것은 카불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친 설산과 황토색 대지. 오밀조밀 모여있는 돌 무더기들. 산 하나가 통째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지형.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실제로는 카불에서 촬영을 못하고 티벳어디에서 촬영한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도 좋다.)
우리나라에서 연날리기의 처음 시작은 김유신 장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햇던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조선시대에 와서 영조가 백성들에게 본격적으로 보급하였고, 주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 날까지 연을 날리는데 이 때 가장 연날리기에 알맞은 북서풍이 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중국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연을 날리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때가 겨울이기도 했지만, 중국은 넓게 트인 지대가 많아 상당히 대중화되어 있는 듯 했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연날리는 모습을 잘 찾아볼 수 없게된게 안타깝다.
'연'은 우리나라에서도 전래되어 오는 놀이도구이기도 하고,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 처럼
'아이'들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은 재미있게 보았고, 촬영에 감탄하며 보았으며, 영화적 배경을 알고 가슴아파졌다.
연날리기, 아이들, 내전 순으로 범위를 넓혀가며 영화리뷰를 써볼까 한다.
1. 연날리기
아프가니스탄 전통 연날리기는 이렇게 주인(아미르)과 하인(핫산)이 한 조가 되어 이루어진다. 주인은 연 싸움을 하고 하인은 연의 움직임을 쫓는다. 그리고 연 싸움에 이겼을 때, 연을 주워오는 것도 하인의 역할이다. 즉 '연날리는 아이'와 '연을 쫓는 아이'가 한 조를 이룬다.
'핫산'은 카불 최고의 '연을 쫓는 아이(Kite runner)'다. 연 싸움 전략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연을 주워올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끊어진 연이 떨어질 곳을 '알고'있다. 그저 알고 있다. 눈으로 연을 쫓거나 그림자를 따라가거나 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것을 직관적으로 아는 것이다.
2. 파슈툰족과 하자라족
티무르제국이 멸망하며 파슈툰족 왕국이 들어선다. 이때부터 하자라족은 피지배계층으로 전락한다. 아마 파슈툰족에겐 자기땅을 짓밟은 이민족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본에게 느끼는 민족감정과 유사할지도 모르겠다. 쪽바리놈들...하는것처럼.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미르 가족내에서의 관계는 무척 화목하다. 아미르의 아버지인 '바바'와 핫산의 아버지인 '알리'는 정중하지만 다정하고 친근하다. 서로의 존재는 고결한 '명예'의 의미를 갖는다. 아미르와 핫산이 친구처럼, 형제처럼 지내는 것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카불 내의 주류적인 분위기는 그렇지가 못하다. 하자라 소년 핫산은 저녁 파티에서 시중들고, 연을 줍다 '폭행'당하고, 아미르의 미움을 받아 쫓겨난다. 정확히 표현하면 주인의 '뜻'을 헤아리고 물러난다. 일단 아이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3. 내전기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한다. 그것은 아마도 이 분 때문일 것이다.
1998년, 미국에서 결혼을 한 아미르가 '카불'로 돌아와서 보게 된 광경들은 이 탈레반들이 만든 국가였다. 탈레반의 '전횡'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장면들.. 내가 사전지식없이 본 느낌으로는 '공포정치'에 그 자체였다. 다리를 팔아 먹고사는 아이들, 길 가에 목 멘 사체가 걸려 있고, 고아원은 아이를 '상납'하고, 간음한 여인은 축구장에서 공개처형당하는 도시. 그 한가운데에 파슈툰족 '아셰프'와 핫산의 아들 '소라브'가 있었다.
4. 아프가니스탄 사람
핫산의 죽음을 들은 아미르는 그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이기도 한 소라브를 찾아 카불로 떠난다. 그가 거기서 본 것은 참혹하게 변해버린 어린시절의 도시였다. 소련군에게 짓밟히고 탈레반에게 유린당한 절망의 도시였다.
무자헤딘이 권력투쟁에 눈멀었다면 탈레반은 정복욕에 눈이 멀어 타락하기 시작한다. 아프간을 정화하고자 하는 의지.. 그것은 지나친 엄격주의로 나타났으며 영화가 보여주듯 공포정치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조형물을 거부하는 신앙의 극단은 2001년 바미얀 불상의 파괴로 치닫는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실치 않지만 9.11테러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국내외적으로 '광신'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해져버렸다.
영화의 시점은 그 과정에 있는 1998년을 비춘다. 여전히 하자라족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 아셰프는 조국을 떠난데 대해 아미르를 비난하고, 아미르는 아셰프가 말하는 이슬람의 질서에 혐오감을 느낀다. 같은 파슈툰족이지만 이미 삶의 방향이 너무나 달라져버린 것이다. 누가 진정 아프간 사람일까.
소라브는 아셰프의 '노리개'가 될만큼 다재다능한 아이다. 아버지를 닮아 '용기'있게 아미르를 구한다. 새총으로.(연도 새총도 콧대낮은 것도^^ 친근하다. 우리는 같이 살았던 적이 있었다.)
2000년의 미국. 아미르는 소라브를 '하자라 아이'라 부르는 장인에게 정면으로 부딪힌다. 뿌리깊은 파슈툰족 '장군님'에게 미천한 하인의 '이름'을 불러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미국에서의 아프간 사람은 시대에 맞게 변해나가는 것이다. 부당한 차별과 편견에 맞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탈레반의 종교적 엄격주의는 다소 차별적으로 보인다. '문명인'들은 아마 이 때문에 분노하는 것일거다.
이제 영화는 다시 아이들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20년전 어린시절의 추억으로.
아미르도 소라브를 위해선 '천번이라도' 연을 쫓아 갈 수 있다. 이렇게 영화는 감동적으로 끝을 맺는다.
5. 소회
영화를 보면서 제일 감탄했던 건 촬영기술이었다. 근경에서 원경으로, 아이들의 시점에서 연의 시점으로. 자유롭게 펼쳐지는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촬영을 더욱 빛나게 했던 것은 카불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친 설산과 황토색 대지. 오밀조밀 모여있는 돌 무더기들. 산 하나가 통째로 마을을 이루고 있는 지형.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실제로는 카불에서 촬영을 못하고 티벳어디에서 촬영한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도 좋다.)
우리나라에서 연날리기의 처음 시작은 김유신 장군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햇던 것이라고 한다. 그 후 조선시대에 와서 영조가 백성들에게 본격적으로 보급하였고, 주로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 날까지 연을 날리는데 이 때 가장 연날리기에 알맞은 북서풍이 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중국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연을 날리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때가 겨울이기도 했지만, 중국은 넓게 트인 지대가 많아 상당히 대중화되어 있는 듯 했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연날리는 모습을 잘 찾아볼 수 없게된게 안타깝다.